공 부
- 양태평 (1992) -
언제부터인가 나는
공부란 말에 절여져 왔다.
앉아도 공부 일어서도 공부
눈뜨면 마주서는 게
공부였다.
하숙집 책장 너머로
거칠어진 어머니의 두 손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도 공부였다.
인간에의 사랑이
뿌리내릴 수도 있었는데,
예술에의 동경이
일찌감치 터를 넓힐 수도 있었는데,
이상을 향한 날개 못쟎게
현실을 버티는 두 다리가
튼튼하게 지속될 수 있었는데 ……
인생에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공부는
즐거워야 할 소풍에도 따라다녀
넓디넓은 가슴을 사각사각 갉아먹고
타오르는 청춘을 스리슬쩍 훔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