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집

자위 (自慰)

JK_Y 2009. 9. 16. 11:34

자위 (自慰)

 

- 양태평 (1992) -

 

 

탐스런 육체가 욕망에 떨며 몸부림칠 때

가랑이에 베개를 끼고 황홀한 나라로 간다.

 

인간의 자기모순적 존재성에 비애를 느낄 때

잘 다듬어진 싯귀를 품고 평화의 나라로 간다.

 

육체의 신비를 알게 된 것은 열두 살 때부터이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과 검게 돋아나는 털이며 빠알간 액체에

몸서리쳤다.

 

불행스럽게도 열 일곱을 지나면서

자기 영혼을 스스로 달래야 함을 깨달았다

아무도 남의 마음 깊은 곳을 알 수 없다는 인식에

일기장을 흠뻑 적셨다.

 

여고시절 본 영화의 정사 장면이 밤이슬처럼 육신을 적셔올 때

큼직한 바나나를 입에 물고 온 몸을 비비튼다.

 

정치‧사회면의 비린내 나는 기사가 허망함과 울분을 몰아쳐 올 때

끝없이 타락해간 소녀의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육체에게 하듯 영혼을 위로한다.

 

가정과 학교의 엄격한 계율 속에서 자라온 나는

열병 앓는 육체를 식혀줄 아담도 없이

영혼의 질곡을 끊어줄 기사(騎士)도 없이

스물 두 번째의 가을을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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