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집

고 백

JK_Y 2009. 9. 14. 00:04

고 백

 

- 양태평 (1992) -

 

 

빛바랜 일기장의 눈물자국은

가슴이 엷어서가 아니었어라.

 

향기롭던 희망은 최루탄에 절여지고

자유는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어라

 

눈 밝히던 불빛은 돌조각에 묻혀가고

진리는 헤어진 옷자락만 남겼어라

 

다정하던 평화는 새장 속에 갇혀가고

정의는 피흘린 채 쓰러져 있었어라.

 

거울에 비추어진 겹주름살은

일월이 쇠해서가 아니었어라.

 

민감한 세포는 회생을 꿈꾸는데

시간의 엇갈림을 요량할 수 없었어라

 

꽃 피는 봄날은 쉬이 가서 아니 오고

이 시린 겨울밤은 갈수록 깊었어라

 

하고픈 이야기는 화로 속에 묻어두고

부질없는 로맨스만 엮어내 놓았어라.

 

이마적 뿌렸던 웃음소리는

입술이 밝아서가 아니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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