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 양태평 (1992) -
울적할 땐 달무리 되어
달님을 감싸 안고
서러울 땐 햇무리 되어
해님에 하소연하는
물이여, 내 작은 애달픔이여
농부의 굵은 손이 못내 보고파
간질이는 비가 되어 내리어 앉았어라
소녀의 머리칼이 너무 탐스러워
속삭이는 눈이 되어 사뿐히 내렸어라
물이여, 내 짙은 그리움이여
흐르고 또 흐르다 못다 흘러서
강기슭 잡초로 누워 있어라
홀로 선 절벽이 끝내 외로워
한 송이 백합으로 피어났어라
물이여, 내 오랜 친구여
천하를 주유하다
구름으로 떠오르고
신의 약속 나타내려
무지개로 분장하는
물이여, 내 기쁜 노래여
연인들의 끓는 입술 고이 여기어
달콤한 포도 되어 매달렸어라
나무꾼의 타는 갈증 딱히 여기어
산골짝 옹달에 샘이 되었어라
물이여, 내 어여쁜 애인이여
이브의 사악함이 보기 싫어서
거대한 홍수 되어 쓸어 갔어라
아담의 태만함이 안타까워서
격렬한 풍랑 되어 요동쳤어라
물이여, 내 마음의 파수꾼이여
슬프면 슬픈 대로
눈물 되어 살아나고
힘들면 힘든 대로
땀방울로 쏟아나는
물이여, 내 진한 속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