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집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JK_Y 2009. 9. 16. 11:20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 양태평 (1992) -

 

 

나는 일어서야 한다.

 

육신의 게으름이

지친 그늘처럼 허적여 올 때

나는 기지개 켜고

일어나야 한다.

 

흑암의 소용돌이가

몸뚱이를 덮치려 할 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저주의 악마가 흘깃거리며

발목을 죄어올 때

나는 앙상한 뼈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격심한 비탄이

성난 물살처럼 할퀴어올 때

나는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깨끗지 못한 손이

심령을 단죄할 때도

나는 아담의 수치를 씻고

일어서야 한다.

 

예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신의 기괴한 연금(鍊金)을

감사해 하며

나는 흔연히

일어서야 한다.

 

 

나는 나아가야 한다.

 

혼란의 불바다가

주위를 삼키려 할 때

나는 화독을 무릅쓰고

불길을 뚫어야 한다.

 

비아냥거림이

거친 목청을 돋구어올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싸워 나가야 한다.

 

병마의 이리떼가

속임수로 유혹해올 때

나는 의식의 불을 밝히고

헤쳐 나가야 한다.

 

일상의 권태가

전신을 휘감아올 때

나는 몸을 가누고

발길을 옮겨야 한다.

 

시기질투하는 악몽이

시선을 흐릴 때에도

나는 꽃이 만발한 신작로로

몸을 끌어가야 한다.

 

예서 머무를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빗발치는 공허의 화살을

막아내며

나는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나는 달려가야 한다.

 

죽음의 사냥개가

지성을 벼랑으로 내몰아칠 때

나는 맨살로

뛰어가야 한다.

 

살벌한 정적이 얼음장처럼

감성을 마비시킬 대

나는 피 뿌리며

달려가야 한다.

 

약탈자의 표독스런 혓바닥이

의지를 삽질해갈 때

나는 신발끈 홀쳐매고

달음질해야 한다.

 

전통의 수호신이

곰팡내 나는 굴레를 씌우려 할 때

나는 악취나는 하수구를

헤집고 올라야 한다.

 

멸시와 조롱이 킬킬대며

회오리쳐올 때도

나는 분노하는 심정으로

솟구쳐야 한다.

 

예서 만족할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오만한 광란의 총칼을

물리치며

나는 불사신(不死身)으로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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