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 양태평 (1992) -
나는 일어서야 한다.
육신의 게으름이
지친 그늘처럼 허적여 올 때
나는 기지개 켜고
일어나야 한다.
흑암의 소용돌이가
몸뚱이를 덮치려 할 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저주의 악마가 흘깃거리며
발목을 죄어올 때
나는 앙상한 뼈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격심한 비탄이
성난 물살처럼 할퀴어올 때
나는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깨끗지 못한 손이
심령을 단죄할 때도
나는 아담의 수치를 씻고
일어서야 한다.
예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신의 기괴한 연금(鍊金)을
감사해 하며
나는 흔연히
일어서야 한다.
나는 나아가야 한다.
혼란의 불바다가
주위를 삼키려 할 때
나는 화독을 무릅쓰고
불길을 뚫어야 한다.
비아냥거림이
거친 목청을 돋구어올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싸워 나가야 한다.
병마의 이리떼가
속임수로 유혹해올 때
나는 의식의 불을 밝히고
헤쳐 나가야 한다.
일상의 권태가
전신을 휘감아올 때
나는 몸을 가누고
발길을 옮겨야 한다.
시기질투하는 악몽이
시선을 흐릴 때에도
나는 꽃이 만발한 신작로로
몸을 끌어가야 한다.
예서 머무를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빗발치는 공허의 화살을
막아내며
나는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나는 달려가야 한다.
죽음의 사냥개가
지성을 벼랑으로 내몰아칠 때
나는 맨살로
뛰어가야 한다.
살벌한 정적이 얼음장처럼
감성을 마비시킬 대
나는 피 뿌리며
달려가야 한다.
약탈자의 표독스런 혓바닥이
의지를 삽질해갈 때
나는 신발끈 홀쳐매고
달음질해야 한다.
전통의 수호신이
곰팡내 나는 굴레를 씌우려 할 때
나는 악취나는 하수구를
헤집고 올라야 한다.
멸시와 조롱이 킬킬대며
회오리쳐올 때도
나는 분노하는 심정으로
솟구쳐야 한다.
예서 만족할 수는 없다.
내 몸엔 언제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오만한 광란의 총칼을
물리치며
나는 불사신(不死身)으로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