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전철 안에서
- 양태평 (1992) -
매일 아침 나는 땀을 뺀다.
빽빽한 전차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대끼며
체중을 조절한다.
젖가슴은 낯선 남자의 등과 팔에 닿고
아랫배는 남자의 엉덩이에 닿아
온몸이 더워지고 숨이 가빠진다.
깔끔한 중년 신사의 등은
무척 포근하고 여유있게 느껴지지만,
건달패 같은 녀석들의
역겨운 냄새도 맡아야 한다.
매일 아침 내 엉덩이는 분할점령된다.
오른 엉덩이는 중년 남자의 왼손에
왼 엉덩이는 대학생의 오른손에
부드럽게 문질러진다.
급정거하느라 우르르 흔들릴 때면
늘어뜨려진 내 손이 남성기에 닿기도 하지만
남자의 손이 내 유방이나 엉덩이를 움켜쥐기도 한다.
매일 아침 나는 정액냄새를 맡는다.
전차의 흔들림을 이용하여 밀착하여 오는 남자들을
나는 밀쳐내지 않는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남자의 거시기가
내 엉덩이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와
화를 내며 액체를 뿜고
더운 기운을 퍼뜨린다.
매일 아침 나는 남녀의 실랑이 소리를 듣는다.
신체접촉을 좋아하는 남자와 싫어하는 여자의
앙칼진 다툼을 듣는다.
“손 치워요”
“별 미친 놈 다 있어”
“에이 재수없어”
“아이 지겨워”
“창피하지도 않은가 봐”
불쾌하다고 짜증부리는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다.
“엉덩이를 치우면 될 것 아냐”
“생사람 잡고 있네, 이 년이”
“재수 없는 건 나야. 너 같은 호박과 몸이 닿는다는 현실이 슬퍼”
“이게 아침부터 누구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
되려 큰소리치는 남자도 있고
침묵을 지키는 남자도 있다.
매일 아침 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밀치고 들어가야 하는 전차,
대학생도 있고 군인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중고생도 있고 노인도 있다.
교수도 있을 게고 사장도 있을 게다.
나는 매일 아침 뭇 사내들과 몸을 비비며
나른한 출근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