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집

볕들지 않는 사무실

JK_Y 2009. 9. 16. 11:35

볕들지 않는 사무실

 

- 양태평 (1992) -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엔

햇볕이 안 들어.

하루종일 있어도

햇빛 보기가 힘들어.

 

앞에는 15층 건물

옆에는 10층과 12층

뒤에는 8층 건물.

2층에 있는 우리 사무실은

너무너무 갑갑해.

 

아침에 출근할 때 잠깐

저녁에 퇴근할 때 잠깐

토요일 오후나 휴일에라야

볼 수 있을까

볕 보기가 아주 정말 힘들어.

 

한 번씩 바람쐬러 거리로 나가지만

일이 바빠서 자주 그러진 못해.

감옥생활 하는 것도 아닌데

햇빛기피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너무해.

 

그래도 참고 있는 것은

순전히 처자식 때문이라고

가장인 내가 먹여 살려야지.

그래서 체념하고 일에나 열중하지

다른 데로 옮겨봐야 별 수 없을 테니.

 

한 가지 좋은 것은

젊은 여사원이 많다는 것.

꽃 같이 화사하고

새 같이 발랄한

그녀들 때문에 생기가 돋는다고.

 

엷게 화장한 손양의 보조개 짓는 얼굴과

봉긋하게 솟아오른 김양의 탐스런 가슴과

요염하게 흔들리는 민양의 균형잡힌 엉덩이가

내 눈을 즐겁게 해

아니, 우리 눈을 즐겁게 해.

 

부장의 잔소리가 좀 심해도

과장이 턱없이 질책을 해도

그녀들의 향취와 웃음소리에

기분이 대번에 확 풀린다고.

 

불쾌한 일 화나는 일 많이 겪어도

그녀들 때문에 견딜만은 해

볕들지 않는 것도 문제가 안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