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집

이역(異域)에서

JK_Y 2009. 9. 16. 11:32

이역(異域)에서

 

- 양태평 (1992) -

 

 

그날 밤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주름잡힌 속치마와 광나는 구두 뒷굽에

값싼 자존심은

휴지조각 되어

명동 한복판을 뒹굴고

한여름밤의 진한 공기가 오히려

한기를 휘감아와

온몸에 스멀거렸다.

 

하나 둘 꺼져 가는 네온사인에

초라한 몸뚱이 둘 곳 없이

우뚝 솟은 괴물들.

 

집은 없어도

집은 없어도

가긴 가야겠는데

하늘은 왜 그리도 흐려 있는지.

 

곳곳에 독사의 혓바닥이 날름거리는데

메아리 오갈 데 없고

피눈물도 마른

낯선 땅.

 

남은 건

가슴 한 구석

옥터퍼스의 칼날만이 ……